2026년 9월 22일 화요일

김제평야의 안개 위에서 세계일주를 꿈꾸다

 

첫 주자로 버너를 잡았던 날부터 60대의 새로운 도전까지, 꿈에는 정년이 없었다

아침 안개가 김제평야를 덮고 있었다. 가까운 논과 농로는 희미하게 보였지만 조금만 시선을 멀리 보내면 들판은 하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익숙한 풍경인데도 그날은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열기구 바구니에 올라 첫 주자로 버너 손잡이를 잡았다. 조금 전까지 동료들과 기구를 펼치고 장비를 확인하느라 분주했지만, 바구니 안에 서자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고요해졌다.

동료들은 바구니 주변에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구피가 제대로 부풀었는지 올려다보았고, 누군가는 바구니의 상태를 확인했다. 함께 준비했지만 열기구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는 바구니 안에 있는 사람이 하늘과 바람을 마주해야 했다.

나는 버너 손잡이를 힘껏 당기며 외쳤다.

“파이어!”

거대한 불꽃이 굉음을 내며 머리 위로 솟구쳤다. 뜨거운 열기가 구피 안으로 들어가자 바구니가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밑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을 느끼는 순간, 기대와 긴장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날 내가 붙잡은 것은 버너 손잡이만이 아니었다. 언젠가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오래된 꿈의 끈도 함께 붙잡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시작된 비행

열기구가 땅에서 떨어질 때면 언제나 비슷한 놀라움이 찾아온다.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빠르게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전까지 발밑에 있던 풀이 천천히 멀어지고, 바구니를 붙잡고 있던 동료들의 손이 하나씩 떨어진다.

목소리는 땅에 남고 사람들의 모습은 점점 작아진다. 커다란 기구가 우리를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몸이 떠오르는 순간에는 누구나 잠시 말을 잃게 된다.

나는 아래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도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과 땅에 남아 열기구를 따라갈 사람들이 나누는 짧은 인사였다.

고도를 조금씩 높이자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던 풍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논과 논 사이를 잇는 농로가 나타나고, 반듯하게 나뉜 경작지와 아침 햇살을 받은 물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개가 한꺼번에 걷힌 것은 아니었다. 높이가 달라질 때마다 풍경의 일부가 열렸다가 다시 가려졌다.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길이 나타나고, 흐릿했던 마을의 윤곽이 서서히 선명해졌다.

나는 그 과정이 좋았다. 모든 것이 단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눈앞에 새롭게 나타나는 장면을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

하늘에서 다시 본 농부의 땅

김제평야는 땅 위에서 바라보아도 넓다. 우리나라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라는 말이 실감 날 만큼 논과 밭이 멀리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다본 김제평야는 단순히 넓은 땅이 아니었다.

가지런하게 나뉜 논 한 필지마다 농부의 시간이 들어 있었다. 봄에는 논을 갈고 물을 대며, 모내기철에는 어린 모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논을 살핀다. 여름에는 더위와 병충해를 견뎌야 하고, 가을에는 태풍과 비를 걱정하며 수확할 날을 기다린다.

그때의 나는 농업을 지금처럼 깊이 알지 못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논은 아름다운 무늬에 가까웠다. 반듯한 논과 구불구불한 물길, 그 사이를 지나는 농로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하지만 직접 농사를 경험하고 농촌의 현실을 알게 된 지금 그 사진을 다시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보인다. 논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 수많은 농부가 한 해의 생계와 희망을 걸고 만들어 놓은 삶의 자리였다.

하늘을 나는 나에게는 특별한 아침이었지만 그 아래에서는 누군가가 평소와 같은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농부는 논물을 확인하고, 농기계를 살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의 날씨를 걱정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당시의 사진이 더 깊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반드시 그 풍경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열기구를 만난 순간

안개 낀 평야 위를 지나던 중 다른 열기구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먼 하늘에 찍힌 작은 점처럼 보였지만 같은 방향의 바람을 만나면서 조금씩 선명해졌다.

나는 몸을 돌려 그 열기구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저 바구니에 탄 사람들도 우리를 보고 있을까. 그들이 바라보는 김제평야는 내가 보는 모습과 같을까.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아침을 날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다.

조금 더 가까워진 열기구는 논 사이로 이어진 길과 나란히 움직이고 있었다. 땅에는 사람이 만든 곧은 길이 있었고, 하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길이 있었다. 자동차는 도로를 따라가지만 열기구는 바람이 열어 주는 길을 따라간다.

두 길이 한 장면 안에 놓여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며 내가 살아오면서 지나온 길들을 떠올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분명했던 때도 있었지만, 안개 낀 아침처럼 앞이 보이지 않던 때도 있었다. 계획한 길이 막혀 돌아가야 했던 적도 있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람을 만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길을 잠시 잃었다고 생각했던 시간에도 나는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늘에서 세계일주를 꿈꾸다

바람을 따라 움직이던 중 오래 품어 온 꿈이 떠올랐다.

언젠가 세계일주를 해보고 싶다.

어느 나라부터 가야 할지, 어떤 도시를 지나야 할지 구체적으로 정해 놓은 것은 아니었다. 유명 관광지를 모두 돌아보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다만 내가 살아온 곳과 다른 풍경 앞에 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오래전부터 가슴 한쪽에 남아 있었다.

낯선 나라의 아침은 어떤 소리로 시작될까. 김제평야의 논 대신 다른 작물이 자라는 들판은 무슨 빛깔일까. 먼 나라의 작은 마을에서도 사람들은 일터로 향하며 서로 인사를 나눌까.

나는 그런 일상의 모습을 만나고 싶었다.

유명한 건축물 앞에서 사진 한 장만 남기고 이동하는 여행보다 오래된 시장을 천천히 걷고 싶었다. 골목의 작은 식당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맛보고, 해 질 무렵 사람들이 어느 길로 집에 돌아가는지 바라보고 싶었다.

다른 나라의 하늘 아래 서게 된다면 김제평야의 안개 낀 아침을 떠올리고 싶었다. 아무리 먼 곳까지 가더라도 내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잊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날의 세계일주는 실제 여행이 아니었다. 여권도 항공권도 없었고 여행가방조차 준비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국경을 넘어 낯선 땅과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꿈꾸는 사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도 목적지에서 보내올 행복을 미리 누린다. 계획을 세우며 한 번 행복하고, 그곳의 풍경을 상상하며 다시 행복하며, 언젠가 떠날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면서 또 한 번 행복해진다.

나는 김제평야 위에서 세계일주를 꿈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도 전에 이미 여행이 주는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꿈은 이루어진 뒤에만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는 꿈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목표를 달성하고, 원하는 자리에 오르고, 계획한 곳에 도착해야 꿈이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꿈은 결과만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꿈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동안에도 사람은 행복할 수 있었다. 꿈을 생각하면 오늘의 삶이 조금 더 넓어지고, 힘든 현실을 견딜 이유가 생겼다. 당장 떠날 수 없어도 지도를 바라보며 마음을 달랠 수 있었고, 먼 곳의 풍경을 상상하며 다시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었다.

김제평야의 안개 위에서 세계일주를 꿈꾸던 나는 아직 세계를 돌지 못했다. 그러나 그 꿈 덕분에 눈앞의 풍경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다. 다른 나라와 다른 사람의 삶을 궁금해했고, 내가 살아가는 땅의 가치도 새롭게 발견했다.

먼 곳을 꿈꾸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서 있는 곳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꿈은 현재를 버리고 미래로 도망가는 일이 아니었다. 오늘을 더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마음의 방향을 세워 주는 일이었다.


인생의 안개는 쉽게 걷히지 않았다

열기구에서 내려온 뒤의 삶이 언제나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사업과 농업,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기대한 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았다. 잘될 것이라고 믿었던 일이 막히고, 예상하지 못한 실패와 손실을 겪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젊은 날의 꿈을 잠시 잊고 살아야 했던 때도 있었다. 눈앞의 책임을 감당하느라 멀리 바라볼 여유가 없었고,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일이 더 중요했던 시절도 있었다.

인생의 안개는 김제평야의 아침 안개처럼 고도를 조금 높인다고 한꺼번에 걷히지 않았다. 어떤 문제를 넘으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고, 이제 길이 보인다고 생각하면 예상하지 못한 바람이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나 열기구 비행을 떠올리면 한 가지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안개 때문에 멀리 보이지 않을 때는 지금 보이는 곳부터 확인하면 된다. 처음부터 모든 길을 알 필요는 없다. 가까운 풍경을 살피고, 바람의 변화를 느끼며, 필요한 순간에 다시 버너를 당기면 된다.

삶도 그렇게 이어져 왔다. 한 번에 세계를 돌지는 못했지만 그날그날 필요한 일을 해냈고, 보이지 않는 길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60대,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이제 나는 60대가 되었다. 젊은 시절처럼 시간이 끝없이 남아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체력도 달라졌고, 책임져야 할 일과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조건도 많아졌다.

그렇다고 꿈까지 나이를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60대가 되고 나니 어떤 꿈을 붙잡아야 하는지가 조금 더 분명해졌다.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성공보다 내가 살아온 경험을 기록하고, 농업과 투자에서 얻은 지식을 나누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남기고 싶어졌다.

귀농과 농업, 새로운 사업과 블로그 운영은 나에게 또 다른 세계일주와 같다. 낯선 나라를 찾아가는 대신 아직 가 보지 않은 인생의 후반부로 떠나는 여행이다.

블로그 ‘열기구메니아의 돈 길 여행’을 다시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다. 내가 걸어온 길과 실패, 다시 선택한 방법을 기록하면서 인생 2모작의 새로운 항로를 만들어 가고 싶다.

젊은 날에는 열기구를 타고 세계의 하늘을 날고 싶었다. 지금은 글과 경험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의 삶과 만나고 싶다. 여행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더 넓은 세상을 향하고 싶은 마음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60대의 도전은 젊은 시절의 꿈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그때 품었던 꿈을 지금의 경험과 형편에 맞게 다시 이어 가는 일이다.

나는 과거의 꿈을 버리고 새로운 꿈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날 김제평야의 하늘에서 바라보았던 먼 곳을 향해,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첫 번째 ‘파이어’와 두 번째 ‘파이어’

그날 버너를 잡으며 외쳤던 “파이어!”라는 말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당시에는 열기구를 띄우기 위한 신호였다. 뜨거운 불꽃이 솟아오르면 구피 안의 공기가 데워졌고, 열기구는 조금씩 고도를 높였다.

지금 나에게도 또 한 번의 “파이어”가 필요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늦었다는 생각,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조급함을 밀어내고 다시 손잡이를 당겨야 한다.

첫 번째 파이어가 열기구를 하늘로 띄웠다면 두 번째 파이어는 멈춰 있던 내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60대의 도전은 젊은 시절보다 느릴 수 있다. 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체력과 형편에 맞추어 고도를 낮춰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여행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는 빨리 도착하고 싶었다. 지금은 지나가는 풍경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차이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예전보다 좋은 여행자가 되었다고 믿는다.


꿈을 꾼 사람만이 간직할 수 있는 한 장의 추억

언젠가 세계일주를 떠나는 날이 오면 출발 전날 잠을 설칠지도 모른다. 여행가방을 여러 번 열어 보고, 빠뜨린 것은 없는지 확인하며, 먼 길을 앞에 두고 설렘과 걱정을 함께 느낄 것이다.

낯선 나라에 도착해 무엇부터 보아야 할지 몰라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있다. 그때 나는 김제평야의 아침을 떠올릴 것이다.

안개 속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려고 하지 않았던 일, 가까이 드러나는 풍경부터 천천히 눈에 담았던 일, 다른 열기구를 만나 반가워했던 일, 그리고 바구니 안에서 더 먼 세상을 꿈꾸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세계일주를 실제로 떠나지 못하더라도 그 꿈이 헛된 것은 아니다. 꿈을 품고 살아온 시간은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그날의 비행을 특별한 추억으로 만들어 주었다.

비행을 마치고 땅에 내려왔을 때 동료가 물었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했어?”

“세계일주를 생각했어.”

누군가는 웃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어느 나라부터 가고 싶으냐고 물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날 김제평야 위에서 다시 꺼낸 꿈이니 앞으로 천천히 그려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야 할 나라와 순서를 모두 정하지는 못했다. 대신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꿈은 완벽한 계획이 만들어진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꿈에는 정년이 없다

아침에 출발할 때 김제평야는 안개로 가득했다. 나는 첫 주자로 버너를 잡고 “파이어!”를 외쳤다. 열기구가 떠오르자 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 조금씩 나타났다.

다른 열기구와 들판의 길을 바라보며 언젠가 가 보고 싶은 먼 나라를 생각했다. 그날의 비행이 세계일주의 첫 구간은 아니었지만, 세계를 꿈꾸던 내 마음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다.

세월이 흘러 60대가 된 지금, 나는 다시 그날의 사진을 바라본다. 사진 속의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더 먼 곳을 꿈꾸고 있다. 지금의 나는 그 젊은 사람에게 말해 주고 싶다.

네가 품었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삶이 바빠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 꿈 덕분에 힘든 시절에도 마음 한쪽에는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창문이 열려 있었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같은 말을 건넨다.

아직 늦지 않았다.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데 정해진 나이도 없다. 몸으로 먼 나라를 찾아갈 수도 있고, 글과 경험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 버너의 불을 끄지 않는 것이다.

열기구는 한 번의 불꽃으로 계속 날지 못한다. 고도가 낮아지면 다시 버너를 당겨 따뜻한 공기를 채워야 한다. 사람의 꿈도 마찬가지다. 처음 품었던 열정만으로 평생을 날 수는 없다. 살아가며 여러 번 마음의 불을 다시 밝혀야 한다.

나는 이제 다시 손잡이를 잡는다. 젊은 날과 같은 힘은 아닐지라도 더 많은 경험과 더 깊어진 시선으로 새로운 고도를 찾아간다.

그때 김제평야 위에서 꿈꾸었던 세계일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60대가 된 지금, 인생 2모작이라는 더 길고 의미 있는 여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개가 앞을 가려도 괜찮다. 지금 보이는 길부터 가면 된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도 괜찮다. 높이를 조절하며 새로운 바람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마음이 다시 땅으로 가라앉으려 할 때 나는 그날처럼 힘차게 외칠 것이다.

“파이어!”

그 한마디와 함께 나의 두 번째 비행은 다시 시작된다.

꿈에는 정년이 없다. 꿈을 이룬 사람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꿈을 품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도 이미 여행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최초 작성일: 2026년 9월 22일
최종 수정일: 2026년 9월 22일
글·사진: 열기구메니아의 돈 길 여행
기록: 김제평야 열기구 비행 당시의 실제 경험과 사진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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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기구 비행은 기상 상태에 대한 전문적인 판단과 안전교육, 자격을 갖춘 조종자 및 지상 지원팀의 협력이 필요한 활동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비행 경험과 삶의 소회를 기록한 에세이이며 열기구 조종 방법을 안내하는 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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