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가 말하는 공정과 정의
우리는 희생을 배웠고, 젊은 세대는 공정을 묻는다
나는 이제 60대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는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참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어린 시절에는 농업사회의 끝자락을 보았고 배고픔이 낯설지 않았으며 쌀 한 톨과 연탄 한 장이 귀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조금 지나서는 산업화의 거센 물결 속으로 들어갔다. 공장이 세워지고 고속도로가 뚫렸으며 밤낮없이 일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했고,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은행 업무를 보고 물건을 사고 세계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다.
우리 세대는 불과 몇십 년 사이 농업사회와 산업사회, 정보사회를 모두 지나왔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금 세대와 조금 다른 기억과 가치관이 남아 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가족과 공동체가 잘된다면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물론 우리 세대라고 모두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권력과 재산을 이용해 부당한 특혜를 누린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분위기에는 가족과 조직, 마을과 국가를 위해 개인이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다는 정서가 비교적 강하게 존재했다.
국가가 어려우면 조금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부모는 자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뒤로 미루기도 했다. 형제 가운데 누군가를 공부시키기 위해 다른 형제가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들기도 했고, 마을길을 내기 위해 자신의 땅 일부를 양보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지나친 희생이라고 느껴지는 일도 많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몫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우리 세대가 배운 정의의 한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1. 젊은 세대가 말하는 공정은 왜 다르게 들릴까?
요즘 20대와 30대가 말하는 공정을 듣고 있으면 우리 세대와 출발점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젊은 사람들은 “왜 저 사람에게만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습니까?”, “같은 조건에서 경쟁한 것이 맞습니까?”, “실력으로 얻은 것입니까, 아니면 부모와 인맥의 도움을 받은 것입니까?”, “왜 나는 규칙을 지켰는데 누군가는 규칙을 건너뛰어 이익을 얻습니까?”라고 묻는다.
특히 자신과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출발선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큰 성공이나 특별한 기회를 얻었을 때 그 과정이 정당했는지 민감하게 살펴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단순히 질투나 이기심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가 살아온 사회환경을 함께 봐야 한다.
과거에는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비교적 컸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취업, 주거, 결혼, 자산형성과 같은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서 훨씬 큰 불확실성을 체감하고 있다.
기회의 문이 넓다고 느껴지는 사회에서는 누군가 조금 앞서가는 것을 비교적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기회의 문이 좁다고 느껴질수록 작은 특혜 하나도 훨씬 크게 보인다.
열 개의 자리가 있을 때 한 자리를 잃는 것과 두 자리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한 자리를 잃는 것은 체감이 다르다.
그래서 젊은 세대가 절차와 기회의 공정성에 민감한 것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공정은 모두가 똑같이 갖는 것을 의미할까?
공정을 이야기할 때 자주 생기는 오해가 있다.
공정을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결과를 가져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과 획일적 평등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노력과 책임, 위험과 기여가 서로 다른데 결과가 언제나 똑같아야 한다면 그것 또한 공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위험을 감수하고 창업한 사람과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사람이 반드시 같은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기술을 배우고 책임을 맡은 사람과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사람의 보상이 언제나 같아야 할 이유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공정은 모든 사람이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같은 규칙 안에서 기회를 얻고, 노력과 책임과 기여에 따라 정당한 결과를 인정받는 것
에 가깝다.
다만 여기에 반드시 붙어야 할 조건이 있다.
그 규칙이 힘 있는 사람에게는 느슨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만 엄격해서는 안 된다.
돈이 많다는 이유로 규칙을 피해 가고 부모의 영향력이 크다는 이유로 기회를 먼저 얻으며 인맥이 있다는 이유로 줄을 건너뛴다면 젊은 세대가 분노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 문제는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3. 공정만으로 좋은 사회가 완성될까?
나는 젊은 세대에게 공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공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공정만으로 좋은 사회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공정이 “내가 받아야 할 몫이 제대로 돌아왔는가?”를 묻는 것이라면 정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10을 가져갈 수 있지만 공동체 전체를 위해 8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지금 당장은 내게 조금 불리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필요한 일을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의 약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더 여유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부담해야 할 때도 있다.
도시와 농촌,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건강한 사람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이해가 언제나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다.
사회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몫만 정확하게 계산한다고 유지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의 양보가 필요하고 누군가의 책임이 필요하며 때로는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공동체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우리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정신이 있다면 바로 이런 책임감일 것이다.
4. 그러나 희생을 다음 세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는 우리 60대도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이런 말을 해왔다.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을성이 부족하다.”
“나라와 조직을 위해 그 정도는 희생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견뎠다는 이유만으로 다음 세대도 반드시 같은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부당한 제도를 참고 살았다고 해서 그 부당함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도 정의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낮은 임금을 견뎠다고 젊은 노동자도 낮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장시간 일했다고 다음 세대도 같은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고 요구해서도 안 된다.
희생에는 반드시 중요한 조건이 있다.
희생은 스스로 선택할 때 의미가 있지만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에게 강요하는 순간 착취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 세대 역시 젊은 세대가 요구하는 절차적 공정에서 배울 것이 많다.
5. 국가적 정의는 한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공정과 국가적 정의는 어느 특정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60대와 70대의 노후가 안정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20대가 자신의 노력으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30대가 평범하게 일하고 저축하면서 주거와 자녀 양육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농민이 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이 정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도 자신의 노력과 책임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 정당한 과정으로 만든 부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시에 출발선이 부모의 재산과 인맥에 의해 지나치게 결정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기회의 통로도 열어두어야 한다.
성공한 사람을 끌어내리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실패한 사람의 모든 어려움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사회 역시 좋은 사회라고 하기 어렵다.
나는 이 균형을 찾는 것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6.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
20대와 30대가 공정을 요구하는 것은 중요하다.
부당한 특혜가 있다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기회의 사다리가 일부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면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규칙을 지킨 사람이 손해를 보고 권력이나 인맥을 가진 사람이 규칙을 건너뛴다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함께 생각했으면 한다.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공정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 더 많은 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체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자리에 올라갔는가이다.
정당한 노력과 도전, 책임을 통해 성공한 사람이라면 그 성취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 전체를 위해 필요한 문제라면 때로는 내게 돌아오는 몫만 계산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까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이
“왜 저 사람은 나보다 더 많이 가졌는가?”
라는 질문에만 머물러서는 부족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나는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까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지점에서 공정이 정의로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7. 우리 60대에게도 하고 싶은 말
우리 세대 역시 변해야 한다.
과거의 희생을 훈장처럼 내세우면서 젊은 세대에게 순응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국가와 가족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는 이유로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를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우리도 젊었을 때 더 나은 사회를 원했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가 우리가 만든 사회의 부족한 부분을 고치겠다고 나설 때 귀를 열 필요가 있다.
60대의 경험과 20·30대의 감각은 서로 싸워야 할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 필요한 부분이 있다.
우리 세대가 배운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젊은 세대가 강조하는 절차적 공정이 만나야 한다.
한쪽만으로는 부족하다.
희생만 강조하면 부당한 권위주의로 흐를 수 있고 개인의 권리와 몫만 강조하면 공동체가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약해질 수 있다.
8. 공정은 내 몫을 찾는 것이고 정의는 우리 모두의 몫을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가난했던 시절을 지나왔다.
산업화를 지나왔고 정보화 사회까지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이름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일하고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희생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희생을 다음 세대에게 빚처럼 청구해서는 안 된다.
대신 하나의 정신으로 물려주는 것이 좋다.
“나는 무엇을 받을 것인가?”만 묻지 말고 “나는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도 함께 물어보자.
그리고 우리 세대 역시 젊은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사회를 충분히 만들어 놓았는가?”
이 두 질문이 만나는 곳에 세대를 넘어선 공정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9. 좋은 사회는 성공도 인정하고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도 주는 사회다
공정한 사회는 다른 사람의 정당한 성공을 무조건 의심하는 사회가 아니다.
동시에 특혜와 반칙을 외면하는 사회도 아니다.
정당한 노력과 책임으로 성공한 사람의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경쟁은 필요하지만 경쟁의 패자가 영원히 사회 밖으로 밀려나지 않아야 한다.
복지도 필요하지만 노력과 책임의 가치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해야 하지만 공동체가 어려울 때 서로 손을 내미는 마음도 필요하다.
나는 이것이 공정과 정의 사이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10. 세대가 서로에게 배워야 한다
60대는 젊은 세대에게 공동체와 책임의 가치를 말할 수 있다.
20대와 30대는 우리 세대에게 절차와 규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일깨워줄 수 있다.
우리 세대가 경험만을 내세우고 젊은 세대가 과거의 모든 가치를 낡은 것으로 치부한다면 세대갈등만 커질 것이다.
반대로 서로의 경험을 인정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60대의 경험에는 어려운 시대를 견뎌낸 지혜가 있고 젊은 세대의 질문에는 오래된 불공정을 고칠 힘이 있다.
두 가지가 만나야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최종 결론
나는 60년이 넘는 삶을 지나오면서 공정과 정의가 같은 말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질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공정은 규칙의 문제다.
같은 규칙을 적용받고 정당한 노력과 책임에 따라 결과를 인정받는 것이 공정이다.
정의는 그보다 조금 더 넓은 문제다.
사회의 약한 사람과 다음 세대, 나와 직접 관계없는 사람의 삶까지 생각하며 공동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젊은 세대에게 공정을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더 철저하게 공정을 요구하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그 공정이
“내가 손해 보지 않았는가?”
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세대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과거의 희생을 내세워 젊은 사람에게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젊었을 때 더 나은 세상을 꿈꿨다면 다음 세대 역시 더 나은 세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결국 세대를 연결하는 질문은 두 가지다.
젊은 세대는 “규칙은 모두에게 공정한가?”를 묻고, 우리 세대는 “그 공정한 사회를 위해 나는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공정한 사회는 남이 잘되는 것을 이유 없이 끌어내리지 않는 사회다. 동시에 특혜와 반칙에는 단호한 사회다. 노력한 사람이 정당한 보상을 받고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한번 일어설 기회를 주는 사회이며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공동체가 어려울 때 서로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다.
우리가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단순한 재산이나 경제적 성장만은 아닐 것이다.
반칙 없이 경쟁할 수 있는 사회, 노력한 사람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 사회, 약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사회, 그리고 개인의 이익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회.
나는 그것이 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야 할 가장 값진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 이 글은 특정 세대 전체를 하나의 성향으로 규정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세대 내부에도 다양한 가치관과 삶의 경험이 존재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우리 세대’와 ‘젊은 세대’는 세대 간 가치관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일반적 표현이며, 어느 세대가 더 옳거나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50대와 60대가 은퇴 이후 어떤 삶을 준비해야 하는지 더 깊이 생각하고 싶다면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50·60세대가 먼저 해야 할 일은?」**을 함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이 세대와 가치의 문제를 다룬다면 해당 글은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먼저 정리해야 하는지를 현실적으로 다룹니다.
노후의 경제적 자립과 공동체에 부담을 주지 않는 준비를 함께 생각하고 싶다면 **「100세까지 월 400만원을 쓰려면 65세 때 현금이 얼마 있어야 할까?」**를 함께 보면 좋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작은 소득이 왜 중요한지 알고 싶다면 **「생활비 월 400만원을 100세까지 유지하려면? 65세 이후 월 50만·100만·150만원의 작은 추가소득이 6억원 노후자산을 얼마나 바꿀까?」**를 이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부모 세대의 노후와 자녀 세대의 상속을 어떻게 균형 있게 바라볼지 고민한다면 **「집 5억원·농지 5억원, 자녀에게 무엇을 남기고 부모는 무엇을 써야 할까?」**를 함께 읽어보시면 세대 간 책임과 자산의 의미를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연결해볼 수 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건전한 의견과 질문을 환영합니다,
광고.홍보성 댓글.욕설 및 개인정보가 포함된 댓글은 삭제 될 수 있습니다.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